디트로이트에 내리고 미국에 온 이후로 가장 가벼운 짐을 들고 세관 검색대를 통과했다. 여느때면 먹을거 하나라도 걸리면 어쩌나 했는데 달랑 캐리어 하나에 책가방 하나뿐이니 검색할 것도 없었다.
종현이와 유원이가 공항에 새 차 알티마를 끌고 나타났다. 이 부부에게 지난 일년간 라이드도 열심히 해주고 때론 아예 차를 열쇠 채로 주곤 했는데 어느덧 새차를 마련해서 라이드 나오니 내가 차 사준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하다. 앤아버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이 녀석들은 '형 가면 우째요.' 벌써 이러기 시작한다. 야아 그 이야기는 내일 해도 늦지 않아.
비행기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차는 결국 손을 못보고 800마일을 운전하게 생겼다. 겉보기엔 이상이 없지만 꽤 오래된 차이니 가기 전에 기도 쎄게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성준이네에 대충 짐을 풀고 이 전 집에 미쳐 다 못가져온 짐을 가지러 갔다. willowtree apartment. 앤아버에서 가장 싼 아파트중 하나 - 너무 후져서 한국인들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이 곳에서 왠만하면 안산다는, 그래서 중국인과 인도인이 전체 입주민의 80%가까이 되는 이 아파트에서 1년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심정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중 하나를 이 곳에서 보냈으니 절대 잊지 못하리라. 박스 두어개를 차에 싣고 전자 레인지와 밥솥은 룸메이트에게 주기로 했다. 나름 형인데 이 녀석에게 해 준게 없어서 뭐 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많이 놓고 가기로 했다. 마지막 박스를 차에 싣고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조금 울컥할 뻔했다. 아냐. 지금 이러면 안돼.
사람들에게 앤아버에 왔다는 사실도 안 알리고 성준이와 둘이서 소소하게 라면이나 끓여먹기로 했다. 성준이는 앤아버의 마지막 저녁인데 이래도 되냐는데 난 그냥 이러고 싶었다. 떠나는데 의미를 부여하기 싫어 최대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고 싶었다. 영준이가 용케 내가 온 걸 알고 찾아 왔고 한 달 전에 앤아버를 떠나기 전에 인사를 못했던 혜선이가 드레스업한 저녁 약속 복장으로 그대로 나타났다. 고맙다 고마워. 너희들 정말 보고 싶을 거야. 차가 공장에 들어간 해원이네 직접가서 마지막 인사를 했고 승기형네 가서 마지막으로 차를 마셨다. 목사님께는 못 뵙고 갈거라고 말씀드리니 꽤 서운해 하시는 듯 했다.
아침에 일어나 차에 짐을 실으면서 이게 다 들어갈까 싶었는데 생각했던 짐의 태반을 실어내고는 도와준 성준이와 영준이가 박수를 쳤다. 이 차를 몰고 800마일을 운전해야 한다구.. 하하. 형 노숙자 같아요. 낮 약속이 있던 종현이와 유원이가 급히 성준이 집까지 먹을걸 사들고 왔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들었다. 유원이는 뭔가 슬프긴 한데 차에 짐 가득 싣고 오빠 가는 모습이 너무 웃겨요. 라고 그랬다. 응. 그래. 나도 안 슬프고 웃겨서 다행이야.
그동안 못 들은 kosta 강의와 설교들을 mp3 player에 가득 싣고 출발하니 뭔가 은혜로운 시간이 될 것 같다. 현진 누나가 코네티컷까지 운전해가면서 kosta설교들을 모두 다시 들었다 한다. 장시간 운전이 기대된다. 오하이오의 풍경은 삭막하고 도로 사정도 안 좋았고 GPS까지 말썽을 일으키면서 결국 콜럼버스 근처에서 길을 헤메고 말았다. 예정은 일곱시간동안 400마일을 가는 것이었는데 일곱시간이 되도록 250마일 밖에 오질 못했다. 맥도날드 간판이 보이자 일단 버거와 콜라를 먹고 운동삼아 좀 걸으며 기도를 했다. 제가 이곳에 가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니까 가는 것이지요. 라고 물으면서.
웨스트 버지니아의 길은 정말 칠흙과도 같았다. 고속도로에 셀폰 시그널 마저 희미해지자 졸리면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통화라도 하리란 계획조차 틀어지고 kosta 설교를 더 집중해가며 들었다. 열두시가 넘어가자 결국 찰스턴 근처의 모텔에서 차를 멈추고 자고 가기로 했다. 아.. 미국에서 40불짜리 모텔이란 이런 곳이구나.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데워서 피로를 풀려고 했는데 따뜻한 물이 잘 안나온다. 카운터에 뭐라 할까 하다가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뭐라 해봤자 저들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미안해. 이 소리 밖에 없을거 같아 그만 두고 이불을 끌어안고 자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 또 400마일을 달려야 하는데 피로가 쌓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행기에서 내린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닥 힘들지 않다. 많은 생각을 하면 긴장이 풀릴것 같아 간단히 기도를 하고 불을 끄고 이불을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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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이형, 정말 오랫만에 이름 불러보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미시간에서 공부 마치시고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셨군요. 저도 이곳에서 석사 받고 다른 학교 갈까 고민중입니다. 힘내시구요, 언제 연락해요!
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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