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ton 이야기

여기에 | 2005/08/22 02:15 | wooram



5년여 만에 만나서 무슨 할 이야기가 있었을까. 내가 오니까 좋냐- 라고 호기롭게 그의 앞에 가방을 던져 놓고 벌러덩 누웠지만 얼마 안 있어 금방 말이 없어진다. 만나면 신날 줄 알았는데. 쿨하게. 왜 그랬어? 응? 이럴 줄 알 았는데.

종서가 마지막을 보냈다는 곳과 그의 나무를 돌다가 마음이 착찹해져서 담배를 좀 피웠다. 그의 나무 묘비에 거미줄이 쳐져 있어 손으로 좀 치워내다 보니 속상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건 너네들이 있을 곳이 아니란다. 너네 때문에 너무 더러워 보이잖니. 손으로 먼지 쌓인 거미줄을 치우다가 손을 무의식적으로 거미줄을 절레절레 떨었다. 아. 난 이렇게 속물스럽구나. 이 거미줄 하나 치워주는 것도 더럽다고 제대로 못 만지고 있으니 더 속상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선그라스를 꼈다. 같이간 호성이도 묵묵히 거미줄을 손으로 떼어넨다. 솔같은 거라도 하나 가져올 걸 그랬어. 그 녀석은 종서가 가기 한달 전에 같이 있었다. 좀 더 같이 있을 껄. 그때 좀 더 신경썼어야 하는데. 그녀석은 이런 후회를 하고 있다. 내가 오십배는 더 부끄럽다. 난 아예 이제서야 왔는데. 늦어도 한참 늦었다.

버스에서 쓴 편지 두어장를 태웠다. 호숫가라 바람이 강해 태우는데 애를 먹었다. 호성이와 한참 심각해 하다가 편지가 잘 안타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야 편지가 왜 이렇게 안 타냐. 잇색. 편지좀 읽어라. 손에 물집이 나도록 라이터를 켜서 결국 다 태웠다.

소주는 못 사고 그나마 종서가 좋아하던 V8을 주위에 뿌렸다. 근데 이런거 나무에 뿌려도 되나? 아 몰라. 소주를 못 사면 종서가 좋아하던 럼이라도 사오는건데. 내가 게을렀어. 늘 게을렀지. 종서를 마지막으로 본 5년 전도, 그리고 2년 전, 또 지금도. 좋은 사람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 우스워져 버렸다. 난 아직도 부끄럽다.


좀 더 멋지게 되서 돌아올게.
부끄럽지 않게 좋은 사람되서 돌아올게.

이번엔 너무 늦었으니.
다음엔 기를 쓰고 올게.
네 몫까지 살겠다 약속했으니까.
다음엔 보란 듯. 나타날께. 그리고 그간 살아 온 이야기를 쏟아낼께. 지금보단 훨씬 덜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그러면 넌 그러겠지. 옛날 처럼. '역시 우람이란 말야.'
언제나 내 편이었고 나를 대단하게 여겨주는 녀석이었는데. 어떻게 살았어? 물어보고 이러이러했지. 라고 대답하면. '역시!' 라고 언제나 그랬지. 언제나.

널 기억해. 널 기억해.
널 내 삶에서 까먹기 시작하면.
그 때는 내 삶이 구질구질하게 변해가기 시작하는 때 일꺼야.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너 그 이후에 나랑 놀았으면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알아.
왜냐하면 내가 진짜 재미있고 멋지게 살아 왔거든.

그러면 그 녀석은

아띠. 진작 말하지! 좀 미리 와서 이야기 하지 그랬어!




토론토로 돌아와 말 없이 길을 걷다가 웃음이 나왔다.

우리 다시 만나면 정말 그럴 것 같아.


2005/08/22 02:15 2005/08/2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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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 memory of John O

    Tracked from 그 빈 자리 2007/09/25 19:55

    2년 전. 난 종서의 나무 앞에 서서 '다시 올게'라고 한 적이 있었다.킹스턴에서 다섯시간 떨어진 곳까지 왔으니 가까이 오긴 왔는데,이렇게 진작 왔으면.어떻게든 다르지 않았을까.그런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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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혁재군 2005/08/22 22:53

    할말 없음...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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