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8년 전, 91년 한일 슈퍼 게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일 프로야구 대표들이 모여 여섯 게임을 했는데 첫 게임부터 한국은 일본에게 속된말로 완전히 '발렸'었다. 한국 선발 박동희부터 계속 안타를 맞기 시작하더니 조규제에 이르러서는 백투백으로 홈런을 맞고 게임은 8-3으로 끝났다. 이후 다섯 게임을 더 했는데 일본의 에이스들이 출전한 게임은 한 게임도 못 이기고 지역팀이 중심이 된 경기만 어찌어찌해서 두 게임을 이기게 되었다. 마지막 게임은 나름 박빙이었지만 당시 최고의 구원투수였던 김용수의 포크볼을 당시 일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중 한 명이라는 노무라 겐지가 말도 안되게 쳐 내면서 (거의 땅에 맞도록 떨어지는 볼이었는데) 홈런을 만들어 게임은 끝이나고 말았다. 노무라 겐지는 정말 무서운 선수였다. 어떻게 던져도 다 안타를 만들었다. 아니 노무라 뿐만 아니라 일본 선수가 다 무서웠다. 만화에 나오는 야구 선수처럼.

 당시 처음 보는 일본의 야구는 경이 그 자체였다. 얼마전 은퇴한 포수 후루타나 당시 홈런왕 오치아이에겐 도대체 던질 공이 없어 보였고 한국의 수비는 당시 최고의 유격수라는 류중일 조차 버벅이기 일쑤였으니 그 차이가 얼마나 어마어마해 보였을까 싶다. 유일하게 공을 제대로 던지고 스윙을 제대로 해내는 선수라곤 김성한과 선동열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 후로 한번의 수퍼게임이 더 있었고 선동열, 이종범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많은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그 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떤 선수는 잘 했고 어떤 선수는 초라하게 돌아오면서..

 올림픽에 프로선수의 출전이 허용되면서 이 한일 수퍼게임이외에도 이른바 '드림팀'의 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91년과 95년 두 번의 수퍼게임을 통해서 일본과의 격차를 확인한 한국팀은 2000년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불꽃튀는 태그매치를 시작하게 된다. 재미있는 건 이 시드니 올림픽부터 일본은 유난히 이승엽에게 얻어 맞기 시작했는데 2008년 마지막 올림픽 야구도 이승엽에게서 끝난 다는 점.

 18년 전의 수퍼게임과 비교하면 한국 야구가 참 많이 발전했다. 이젠 일본 야구가 아니라 미국 야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지난 WBC때 미국전은 져도 본전이라는 기기분으로 경기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대승.) 박찬호를 제외한 여러 선수의 메이저 리그 진출 실패와 국내 리그 스타 부재로 야구가 한참 침체라고는 하지만 어느덧 이만큼 경기력이 좋아졌다. 일본과 붙어서 더 많이 이겼다고 함부로 일본 보다 한수 위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연봉 1억원짜리 투수가 연봉 30억짜리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 통쾌하지 않은가? 이젠 우연이나 이변이 아니라 이젠 실력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 흥분과 좌절과 함께하며 보던 한일수퍼게임은 좋은 추억이 되었다. 과거형일뿐이니까.
2009/03/18 18:41 2009/03/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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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cret visitor 2009/03/20 07:37

    Administrator only.

  2. Linus 2009/03/23 10:30

    댓글이 잘 달리는 지 테스트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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