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년까지 살았던 흑석동에서 애틋하게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가 84번 노선 버스이다. 지금은 아마 151번으로 바뀐 것 같은데 아무튼 흑석동 끝 달동네를 주욱 내려와서 흑석시장을 거쳐 마지막 자락의 중앙대 입구에 가면 84번 버스의 종점이 있다. 내가 살았던 골목은 차 한대가 힘들게 들어오면 후진해서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작은 곳인데 (그나마도 대부분은 엄두를 못내 계란 장사나 '계란이이- 와써요-'하며 겨우 들어오는) 그 골목을 따라 십분 정도 내려가면 대학생 형들이 왔다 갔다 하는 별세상 한가운데에 84번 종점이 있었다. 세상 좁게 사는 골목 꼬마들에게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어 버스를 탄다는 건 꽤나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난 여덟 살 때 평생 처음으로 버스를 내 힘으로 혼자 타 봤는데 도대체 왜 탔는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유일하게 기억나는 거라곤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한강을 건너자마자 얼른 내려서 반대편에서 도로 버스를 타고 왔던 것 뿐이다. 누가 너 왜 엄마도 없이 혼자 버스 탔냐고 물어볼 거 같았고(그게 왜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모르는 서울 밖으로 후딱 벗어나서 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어떻게 돌아오고 나서 반 애들에게 자랑을 한달을 했던거 같다. 나 버스 혼자 타봤다! 엄청나지! 딱지치기와 팽이치기로 놀이를 연명한 아이들에게 혼자 시내버스를 탄다는 건 거의 개벽에 가까운 일이 아니던가. 그 좁은, 차도 제대로 못 들어오는 흑석동 골목에서…
국민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창덕궁으로 갔었는데 그때 이 84번 버스를 타고 가며 아이들이 서로 창가에 앉으려고 옥신각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 한 반에 애들이 오십명은 넘었을텐데 선생님은 어떻게 2학년짜리들을 데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소풍을 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소풍 회비 : 버스비 50*2 + 입장료 무료 = 100원?) 그다지 잘 사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에 버스를 대절해서 소풍을 갈 수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모두들 그 버스를 조르르 타고 가서 그 먼 시내 한가운데의 고궁에 가서 김밥을 먹고 왔다. 흑석동 시절에 대절 버스를 탄 건 활동비를 낼 수 있는 집안의 잘나가는 자제들이 모인 아람단에서 어디 갈 때 빼곤 없는걸 보면 3학년 때 소풍도 이 시내버스를 타고 갔나보다.
그 84번 버스를 타면 흑석동을 벗어나 밤섬을 가로지르는 제3한강교(지금은 한강대교)를 넘으며 63빌딩을 감상하고 다리를 건너면 용산에 도착한다. 이 때부터 신천지 개벽의 시작인 것이다. 용산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고속버스들을 보면서 저 차를 타면 도대체 얼마나 멀리 가는 것일까 궁금해하고 설레이다가 용산을 지나 서울역에 도착하면 사람 구경에 정신이 없다. 서울역을 넘으면 바로 남대문이 나온다. 서울역과 남대문간의 도로는 엄청나게 넓어 (지금도 넓다) 아찔할 지경인데다 남대문을 도는 자동차의 서클 행렬은 가히 여덟살 꼬마에게는 감동의 도가니다. 그리고 그 남대문의 써클을 돌아 소공동을 넘어가면 롯데백화점, 중앙우체국이 있는 명동-을지로를 돌파하며 버스는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꿈과 희망을 어린이에게 안겨준다.
그때가 6.29선언을 끌어낸 6월 항쟁이 있었던 87년이다. 임춘애가 라면 먹고 뛰어 목에 건 금메달 세 개를 포함해 한국이 금메달 90개를 건진 아시안 게임 다음 해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넘쳤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은 민주화되었고 드디어 체육관 중계 방송이 아닌 ‘대통령 선거’란 것을 제대로 해보게 되었고 그 다음해에는 올림픽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나에게 84번을 타고 가며 시내 나들이에 본 그 시기의 남대문은 그 희망에 찬 서울의 상징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모두가 절망을 이야기하고 라면먹고 금메달은 커녕 한번 라면 먹기 시작한 가난한 애는 끝까지 라면만 먹게 생긴 세상이 되었다. 민주화가 되기는 되었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들 마인드는 어째 2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84번이 사라졌고 흑석동은 재개발 되었고, 그리고... 남대문이 불탔다.

남대문이 불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 감흥이 없다가 오늘에서야 인터넷에서 사진 몇 장을 보고 20년 전 84번 버스를 타고 가며 본 남대문의 기억이 살아났다. 우리 국민이 언제 이렇게 문화재를 사랑하는 지 몰랐다며 쓴 웃음을 짓는 이들이 있지만 모두들 이렇게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기억이 희미해졌을 지라도 그 불탄 남대문을 보면 예전의 그 희망에 찬 설렘이 기억이 나 가슴이 아픈게 아닐까. 한국에 돌아가면 흑석동에 가서 그 버스를 다시 타봐야겠다. 남대문은 없을지라도 그 버스를 꼭 다시 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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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딱 저 사진.
내가 어릴 때 큰아버지네 갈 때마다 지나갔다던 길이 저기야 힝
사진을 잘 보면 버스가 엄청 옛날거라는 걸 알 수 있지.
80년대 사진 같아. 중앙청(총독부)도 그대로 있고.
그렇구만...난 서울에 온게 바로 거의 오륜동쪽으로 들어간거라 너와 같은 감흥은 찾기 힘들지만..
어린시절 라면먹고 뛰었던 임춘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 살던 동네의 사라진 뒷산과 학교뒤 저수지가 생각나니 너의 기억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다가오네
추운 날씨에 건강해라~
뉴욕도 좀 춥지 않을까 했는데
앤아버는 정말. 흐..